
국방부는 11일 한미일 3국이 제주도 남방 공해상에서 공중훈련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훈련에는 미국 B-52H 전략폭격기와 우리 공군의 KF-16 전투기, 일본 F-2 전투기 등이 참여했다./국방부
2006년 워싱턴 특파원 시절 전시작전통제권 현안이 한미 간 주요 관심사였다. 당시 미 국방부 한국 과장이던 마이클 피네건 중령과 가깝게 지냈다. 부인이 한국인이어서 한국에 대한 애착이 상당히 컸던 사람이다. 어느 날 저녁 버지니아 애넌데일의 한식당에서 단둘이 식사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국이 전작권을 달라고 할 줄 알고 1년간 치밀하게 준비했다고 말했다. 총괄은 리처드 롤리스 당시 국방부 부차관이 맡았고 조지 부시 당시 미 대통령에게도 보고됐다는 것이다.
피네건에 의하면 한국이 달라고 하자마자 미국은 “당장 (전작권을) 가져가라”고 던졌다고 한다. 그러면서 별도 청구서를 내밀었다는 것이다. 전작권을 운용하는 당사자가 지불해야 할 비용들이었다. 북한을 24시간 들여다보는 인공위성 비용, 통신 감청 비용, 기타 군사 동향 및 전략 자산 운용 비용 등등. 그가 언급한 ‘구독 비용’은 천문학적이었다. 한국이 매년 방위비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지금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피네건은 롤리스 부차관이 당시 한국 고위 관계자에게 지도 한 장을 보여줬다고 했다. 북한 정권 붕괴 등 유사시에 중국군이 청천강 등 국경 60㎞ 안으로 진입한다는 중국의 전략 계획서였다. 북한 정권이 붕괴하면 대규모 난민이 발생하기 때문에 북한으로 군대를 들여보내 국경을 통제한다는 명분이었다. 우리 정부는 그 문서를 보고 크게 당황했다고 한다. 남북한이 통일되더라도 일단 들어온 중국군을 어떻게 철수시킬 것이냐는 문제에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전작권을 운영하려면 주변국에 대한 정보도 획득해야 한다고 롤리스는 덧붙였다. 이후 전작권 이양은 보수·진보 정권을 막론하고 지지부진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전작권을 넘겨받고 천문학적 금액을 지불하며 전략 자산을 구독하느니, 그냥 내버려두는 게 상책이었던 것이다.

2007년 서울 국방부에서 열린 한미 안보정책구상회의에서 리처드 롤리스 당시 미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왼쪽)과 전제국 국방부 정책홍보본부장이 악수하고 있다. 이 회의에서 한미는 전시작전통제권 이양 문제를 논의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미 국방부 차관에 임명된 엘브리지 콜비는 지난해 본지가 주최한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에서 기자와 만나 “주한 미군을 유연하게 운영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면서 “이제 주한 미군의 존재 명분은 중국 억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서 한국은 북한을 충분히 억제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인식을 가진 콜비 차관은 한국 방위에만 묶여 있는 현재의 주한 미군 역할을 어떻게든 바꿀 것으로 예상된다. 이 역시 가장 적은 돈으로 중국을 억제해야 하기 때문에 나온 방안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미군 장성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미군이 한국에서 철수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했다. 우선 2만8000명이 철수할 경우 그들을 수용할 기지를 미국 등에 건설해야 하는데 그 비용만 10조원 이상 든다고 했다. 게다가 전 세계에서 베이징과 가장 가까운 미군 기지는 한국에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미군 전투기가 이륙하면 이론상 10분 만에 베이징이 사정권에 드는데, 한국에서 철수하는 건 미국의 국익에 어긋난다고 했다.
그렇다면 트럼프 정부에서 미군 철수는 없겠지만 유연한 순환 배치는 관철시킬 것으로 보인다. 비용 절감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의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13일 전작권 전환에 대해 “장기적 현안”이라며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주한 미군 재조정과도 관련된 실무협의 사실이 정치적 파장을 일으키자 한발 물러선 것인데,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국이 독자적인 정보 능력을 갖출 때까지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