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대 공과대 연구원 유서
갑질 피해 호소·원망 담겨
경찰·학교 측 진상 조사
전남대학교 공과대학 소속 대학원생이 학교에서 목숨을 끊었다. 고인이 지도교수 등의 과도한 업무 지시와 갑질 등으로 고통받은 정황이 발견돼 학교 측과 경찰이 진상조사에 나섰다.
16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지난 13일 오후 5시54분쯤 전남대 기숙사에서 A씨(26)가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해 8월 학부를 졸업한 A씨는 이 대학 공과대학 한 연구실의 석사과정 연구원이었다. 사고 당일은 일요일이었지만 A씨는 출근해 회계업무를 처리했다.
A씨는 SNS에 유서 형식의 메모를 남겼다. 당일 오후 5시22분 작성된 첫 메모에는 “더 이상 버틸 자신이 없다. 서로의 이권과 업무를 위해 나를 계속 잡아당기기만 하는 교수(B씨)와 박사(C씨). 특히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해 모든 일을 떠넘기는 상황에 희생당하고 싶지 않다”는 내용이 적혔다. 이어 “남은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보고 깨달음을 얻고 가스라이팅과 희생을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밝혔다. 5시31분에는 “교수(B씨)와 박사(C씨), 이런 상황이 오기까지 도대체 뭐 했느냐. 너네가 사람 한 명 죽이는 거다. 꼭 명심해라”라는 두 번째 메모를 게시했다.
A씨와 C씨의 카카오톡 대화 기록에는 A씨가 지속적으로 외부 연구과제 수주를 위한 문건을 작성하고, 연구비 정산 업무 등을 처리한 정황이 담겨 있었다. 본래 A씨 업무가 아니다. A씨 컴퓨터에는 골프대회와 칠순잔치 플래카드 준비, 떡케이크와 족구공 등 구매·정산 내용이 문서 파일로 저장돼 있었다.
A씨는 밤늦은 시간에 카카오톡으로 업무 지시를 받기도 했다. A씨는 지난 10일 서울에서 대기업 취업을 위한 2차 면접을 봤다. 면접 날 오전 3시50분 C씨는 A씨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C씨는 다음날인 11일 오전 1시32분에도 업무 관련 메시지를 보냈다.
A씨의 아버지는 “아들이 연구실 책임자인 교수와 연구교수(박사) 사이에 끼어 무리한 업무와 각종 갑질에 시달린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수 B씨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연구실 운영이 (C씨와) 이원화된 것을 신경 쓰지 못한 제 잘못”이라며 “미안하고 책임질 일이 있다면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연구교수 C씨는 “죄송하다”며 전화를 끊었다.
대학 측은 B씨와 C씨를 업무에서 배제하고 해당 연구실 운영에 문제가 없었는지 조사에 착수했다. 전남대는 “대학원장과 인권센터장, 대학원생 대표 등으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으며 이번 사건을 엄중하게 조사해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도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