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ucks&parts 창간 25주년 이슈점검
/ 시대에 맞춰 변화한 화물운송 일감과 운임
지역 운수업체→트럭터미널→화물앱→?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일감 구하기
통신수단 발전과 화물운송시장의 혁신 불구
다양한 형태의 화물정보 공유로 ‘저운임’ 부각
“화물차로 먹고 살기 너무 힘들어졌어. 운임도 부족하니 안전하게 운전할 수가 없지.” 서울 한복판 주유소에서 만난 70대 화물차주 최 모씨의 하소연이다. 최근 2년여 간 기름값과 물가는 계속 올랐지만 화물 운임은 오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최 씨는 안전운전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며 한숨을 쉰다. “차라리 무전기 썼던 옛날이 좋았어. 지금은 운전하다가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봐야 한다니까? 한 탕 더 뛰려고 빨리 가야 하는 건 예사야”
화물차주들이 일감을 구하는 방식은 60여 년간의 세월을 달려오며 큰 변화를 겪어 왔다. 전통시장 골목을 누비던 지역운수업체 시절부터 시작해 트럭터미널 거점 설치, 통신기기 발달을 거쳐 스마트폰 화물앱 등장에 이르기까지, 종전 아날로그와 현재의 디지털 방식을 반영해왔다. 하지만 일감 방식의 발전과 일감 구하기 경쟁이 거듭할수록 정보의 가치는 보편화됐고, 이로 인한 ‘저운임’ 문제가 대두되면서 화물차주들의 생활고는 가중되어만 갔다.
“젊은 시절엔 운송사에 속해 있었을 때가 있었지. 그땐 화주랑 직접 계약하고 일거리고 꾸준히 들어왔었는데...” 최 씨의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화물 운송업에만 40년 째 몸담고 있다는 그의 발길은 어디서부터 시작해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60년 화물운송업 역사 속 화물차주들의 궤적을 짚어본다.
60년대~80년대 초반
지역운수업체와 ‘떡고물’ 영업 전성기
본격적으로 화물차 운송주선업이 등장한 1960년대만 하더라도 화물차주(화물차 운전자)들은 주로 지역 운수업체를 통해 일감을 구했다. 도로망이 열악해 대부분의 물류가 철도에 의존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운수업체가 가까운 지역에서만 단거리 화물을 영업했다. 운임이 높은 장거리 화물을 싣기 위해선 ‘떡고물’, 즉 물량이 많은 업체에 직접 영업을 뛰어야 했다.
“그때만 해도 화물을 직접 알아봤어야 했어. 선배들도 떡밥이랄까? 소문에 의지해 운수회사 옆구리를 잡고 영업하는 식이었었어. 운송물량이 얼마나 있는지, 배차가 누구에게 되는지 인맥 밖에 방법이 있나”
하지만 규모가 작은 운송업체들이 연합하면서 영업력도 커졌다. 특정 운송업체에서 물량이 부족하면 다른 업체에서 보완할 수 있었고, 이에 따라 화물차주들의 수입도 늘어났다. 70년대에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육상 화물운송업도 본격적인 기지개를 켰다. 육상 화물운송업은 경부고속도로를 기반으로 성장해 4년 만에 이용률 52.5%, 이듬해엔 56.7%로 증가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80년대 후반~90년대
트럭터미널·무전기 등장, 전국구 영업시대
80년대 중후반부터 화물차주들의 영업반경이 넓어졌다. 정부는 지방 화물차의 공차를 방지하고 물류비용 절감을 위해 도시 외곽도로, 철도 등 교통 시설과 도매 시장 등 유통 시설을 잇는 위치에 트럭터미널을 세웠다. 이에 동부화물터미널(서울 장안동)을 시작으로 서부트럭터미널(서울 신정동), 한국화물터미널(서울 양재동) 등 트럭터미널이 속속 생겨났다.
정부가 대도시 외곽에 트럭터미널을 세우면서 터미널이 화물차의 거점 역할을 맡았다. 터미널에는 화물취급시설, 주차장, 정비소 등 편의시설이 갖춰져 대기와 영업이 수월해졌다.
“내가 이 때 사무실에 들어갔지. 정말 호구지게 벌었어. 물량도 많았고” 최 씨는 1990년을 회상하며 흐뭇해 했다. 당시 사무실에서 준 무전기 등 통신기기가 도입되면서 차량에서도 오더를 기다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효율성이 한층 높아진 셈, 무전기 덕분에 화물차주들은 기지국이 닿는 전국 어디서나 화물을 실을 수 있게 되었다. 영업반경이 크게 넓어진 것이다. 이 무렵이 화물차주들의 전성기로 꼽힌다.
2000년대
신규차주 과잉공급과 운임 폭락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정부가 경제 부흥책으로 화물차의 신규등록 기준을 대폭 완화했다. 신규 운송사업자 등록기준을 완화했으며, 1999년에는 영업용 번호판 등록체제를 기존 ‘면허제’에서 ‘등록제’로 변경했다. 등록만 하면 화물업에 뛰어들 수 있었기 때문에 직장을 잃은 중장년 인력이 대거 화물운송업에 유입되며 화물차주의 숫자가 급증했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1997년 이후 5년간 영업용 화물차 대수는 96% 이상 증가했다.
반면 물동량 증가세는 이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화물차주들 사이의 경쟁이 과열되면서 운임 하락 사태가 불가피해졌다. 5톤 이상 화물차주의 월평균 소득은 1997년 202만원에서 2003년 165만원으로 18% 급감했다. “그때만 해도 소득이 200만 원이 채 안됐어. 하루 12시간은 일했는데 말이지. 다섯 가족이 먹고 살기에 여간 힘든 수준이 아니었지”
이에 2003년 민주노총 산하의 화물연대가 화물차 시장 진입을 억제하고 운임을 보장해달라며 대규모 파업에 돌입했다. 정부는 2004년 번호판 ‘등록제’를 ‘허가제’로 바꾸면서 진입 장벽을 높였지만 이 시기부터 화물운송시장은 폐쇄성을 띄기 시작했다.
2010년대
화물앱 등장과 신기루 같은 혁신
2010년대로 접어들며 스마트폰 화물앱이 본격 도입되기 시작했다. 화물앱을 통해 화물차주들은 별도의 기지국 없이 스마트폰으로 오더(운송 주문)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지역 제한 없이 전국 어디서나 원하는 화물을 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화물앱이 정말 혁신 같았어. 세상이 이렇게 빨리 변해도 되나 싶더라고. 터미널에 안 가도 되고 휴대폰으로 내가 오더를 선택해서 받을 수 있다니까. 집에서 오더 잡고 운전만 하면 된다는 말이잖아” 하지만 곧 그에게서 웃음 기운이 사라졌다.
“근데 얼마 안 가 말도 안되는 상황이 생기더라고. 과거 같았으면 한 10만 원은 받아야 되는 일인데, 화물앱에 5~6만 원에 뜨더니 그걸 또 누가 채 가더라고? 이게 계속되니까 나도 그걸 받아야 되더라고.”
최 씨의 말처럼 화물앱에는 극단적인 저운임 화물이 난무했다. 또 일부는 ‘지지기’와 같은 불법 프로그램을 동원해 좋은 일감을 가로채기도 했다. 무엇보다 화물운송 시장 전체가 화물앱 기반이 되면서 과거의 폐쇄성이 사라졌고, 이에 따라 저운임 문제가 본격화되었다.
“기사들이 운임을 스스로 낮춘 꼴이지 뭐. 그걸 받으면 운전하면서도 다음 일감을 찾아봐야 하니 정작 안전운전은 할 수가 없게 되는 거야. 교차로 신호등 바로 앞에 걸린 화물차 봐봐. 녹색으로 신호등이 바뀌어도 출발 안하는 차들 다 화물앱 보고 있는거야”
2020년대~현재
화물앱 시대 저운임 문제 해결은 과제
화물앱의 성장세는 매서웠다. 주요 화물앱을 운영하는 업체 관계자는 “3톤 이하 화물을 주로 운송하는 개인차주의 경우, 95% 이상 본인의 스마트폰에 화물앱이 1개 이상 설치돼 있으며, 40% 이상의 화물차주들이 화물앱을 3개 이상 설치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교통연구원의 ‘2022 화물자동차 운송·주선업체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주선업체가 화물을 운송하기 위한 화물운송 차량을 확보하기 위하여 화물정보망을 이용하는 비율은 2022년 기준 33.5%로 집계됐다.
“최근에는 주유비와 타이어 교체비 등 유지비가 많이 올랐어. 그런데 운임은 오르긴 커녕 내려가니 답답할 노릇이지. ‘똥단가’를 계속 받다가는 두 건 해야 할 걸 네 건을 해야 할 판이야. 수지타산도 안 맞고 이제는 그만해야 하나 싶어”
업계에서는 정부가 합리적인 운임기준을 만들고 이를 어기면 제재하는 등 적극 나서주길 바란다는 목소리가 높다. 화물운송업계의 최우선 과제는 화물앱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운임보장 기준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최 씨를 비롯한 화물차주들의 힘겨운 화물 운송길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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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용 기자 jung.hy@cvinfo.com
출처-상용차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