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지성사를 공부해온 입장에서 볼 때, 이재명 대표의 "중도보수" 발언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대체 언제 민주당이 좌파 정당이었나? 국익을 앞세우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자는게 어떻게 좌파의 논리일 수 있는가? 물론 민주당은 늘 "진보"의 가치를 신봉해왔다. 그러나 진보가 좌파의 중심 가치였던 것은 아주 오래전 역사이다. 한국사회는 일견 이념 대립이 분명한 것 같지만 뭔가 뒤죽박죽이다. 물론 각 사회마다 고유의 역사적 경험에 따라 정치 지형이 형성되게 마련이지만, 기본적인 좌우의 방향 감각만큼은 제대로 찾으면 좋겠다. 만약 탄핵정국을 넘어 한국사회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려 한다면 냉전시대로 말미암아 왜곡된 정치구도를 확 바꾸어야 할 것이다. 무슨 양당제니, 다당제니 이런 헛논의말고 말이다.
국가발전의 논리는 분명 보수의 논리다. 사회 정의 또한 그것이 불의와 용감히 싸우는 '탁월함'과 관련된다면 분명히 공화주의적 보수의 논리다. 그러나 정의가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투쟁을 의미한다면 좌파의 논리일 수 있다. 적어도 프랑스혁명 이후 좌파의 기본 논리는 탁월하지 못한 사람들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만민평등사상이다. 그가 빈민이든, 무학력자든, 노동자든, 장애인이든, 이방인이든, 여성이든, 성소수자든 인간의 존엄성을 누리고 살 수 있는 사회, 즉 성장/진보보다는 살맛나는 훈훈한 세상을 염원하는 것이 좌파의 기본논리다. (맑스는 계몽사상가들의 '진보' 개념을 받아들였지만 그것은 '발전'보다는 모순/소외의 '지양'에 가깝다) 이렇게 양 진영은 모두 나름의 설득력과 정당성을 지닌다. 안타깝게도 냉전은 정의를 무시하고 국가발전 논리만을 내세우는 불의의 세력들을 득세시켜 보수의 자리를 꿰차게 만들었고 그 잘못된 구도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이제 아무런 정당성도 없는 극우 파시즘 세력을 멀리 내쫓아버리고 민주당이 공화주의적 보수의 자리를 차지하고 그 상대편에 정말로 대안적인 사회를 희구하는 좌파개혁세력이 마땅한 정치적 지분을 얻으면 좋겠다. 예전에 좌파들이 노무현을 그리 미워한 것은 정의롭고 발전된 나라를 만들겠다는 일종의 공화주의자에게 왜 급진적 개혁을 안하냐고 무리하게 요구한데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이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정상적인 양 진영이 헤게모니 전선을 구축하여 파시스트들을 함께 몰아내고 서로 제대로 정당성 경쟁(진짜 이념투쟁!)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오면 좋겠다. 별로 기대되진 않지만...
이런 고등학교 동창이 있어서 행복하네요.비록 저는 이과, 이넘아는 문과라서 접점이 크지 않았지만.
세줄 요약
이재명이 최근에 말한 '중도보수' 발언은 지극히 당연하다
냉전을 통해 국가 발전 논리만 내세우는 불의의 세력이 보수로 득세했다
미래에는 민주당이 보수정당이 되고, 반대편에 좌파 개혁세력이 생겨났으면 한다.